본문 바로가기

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내 인생을 바꾼 8분 47초

 

 

 

 

 

 

많은 사람들은 꿈과 계획을 수립하면서 살아요. 저 같은 경우는 눈앞에 닥치는 일들을 해결하는 거에도 벅차서 꿈을 꿀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한 꿈을 꿀 수 없었던 시간을 정리를 해서 2012년에 Do First, Dream Next라는 책에 얘기를 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가 바로 첫 번째 Do First를 경험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말더듬이를 극복하는 거였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왜소하고 또 소외된 저를 부르면서 반대표로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자고 합니다. 거역할 수 없었기에 2달 동안 선생님과 같이 웅변 연습을 하게 됩니다. 결과는 말도 잘못하는 말 더듬이가 3등의 상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3등이 포인트가 아닙니다. 제가 말더듬이를 고치게 된 것입니다. 저는 Do First였고 저의 선생님은 바로 꿈을 가지신 겁니다. 저 아이의 말 더듬이를 이번 대회를 통해 고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대학을 가게 됩니다. 등록금을 받기 위해 저는 학생회장에 도전을 하게 되고 등록금을 해결합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Do First입니다. 졸업 후 저는 삼성그룹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11년 만에 병을 하나 얻게 되는데 바로 망막박리라는 것입니다. 망막이 눈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실명을 말합니다. 제가 실명의 위기에서 꼼짝 않고 구급차에 실려서 큰 병원 두 곳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는 48일간 누워서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에게 48일은 엄청난 고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내게 온 12년 만에 휴식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이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저는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해두기 때문에 그 메모수첩을 가족에게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읽으면서 내용을 적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것이 바로 제가 쓴 첫 책 <신세대 직장인 50훈>입니다. 

 

 

 

 

 

 

 

 

그 이후 저는 회사를 만들게 되었고 회사는 승승장구를 했습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저는 2011년 4월에 <바보를 찾습니다>라는 샌드위치맨으로 전국 대학의 정문 앞에 서게 됩니다. 무려 두 달간 20개 대학을 돌았고 이게 큰 사건이 됩니다.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중소기업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저는 저의 회사를 위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청와대에서 연락이 옵니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대통령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저희 회사는 93: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가지게 된 회사가 되었습니다.

 

 

 

 

 

 

 

 

2020년 올해 우리는 정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게 되는 고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이 겁을 먹었습니다. 교육컨설팅이기 때문에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 업종입니다. 그때 문득 10년 전에 삼성그룹에서 제가 모셨던 임원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가 무엇을 팔아서 짓고 있는 빌딩인가? 삼성전자가 무엇을 팔아서 세계적인 기업이 됐는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롯데월드는 껌을 팔아서 저 빌딩을 짓는 기업이 됐고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팔아서 지금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껌과 반도체의 공통점은 바로 1달러짜리라는 겁니다. 천 원 정도의 제품을 팔아야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는 천원이 아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는 기업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저에게 말씀을 해주신 겁니다. 

 

 

 

 

 

 

 

 

그래서 찾아낸 무료의 아이콘이 바로 유튜브였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개인 사무실을 두고 있는 세운상가를 가지고 건축적 의미와 세운상가의 사람에 대한 스토리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희 아내가 어떤 가수에게 빠집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갑자기 영상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 8분 47초의 영상이 12만 뷰를 얻게 되었고 8개월 만에 4만 명의 구독자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 영상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소통을 위해 3가지의 규칙을 만듭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아내가 관심 있는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 세 번째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상을 찍어야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아내를 위한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치 본인을 위한 얘기를 한 것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저의 유튜브는 얼마 전에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락이 와서 MBA 과정에 제 영상을 인용하고 싶다고 합니다. 꿈꾸지 않았던 행운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1999년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철학관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철학관의 선생님이 저에게 작은 컵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돈을 버는 크기는 이건대 사업을 할래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컵에 물을 따르는데 물이 차면 물을 다시 붓습니다. 그리고 또 따르고 붓고를 반복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이 컵이 차면 어딘가에 비우라는 의미였어요. 그러면 다시 또 찬다는 이야기였고요. 이 작은 물이 죽어가는 꽃에게는 생명수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저의 철학이 되었고 첫 번째 회사를 만들면서 직원에게 대학원을 진학시키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컵 비우기였습니다. 대통령상을 받고 난 후 저는 두 번째 컵을 비웁니다. 그것이 청년들의 대한 메토링이었습니다. 2011년도부터 지금까지 매월 수많은 청년들을 만납니다. 바로 내일이 매월 하는 청년들의 조찬회 하는 날입니다. 지금 그들이 리더가 되었고 제가 거꾸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이 많은 관심을 얻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광고 수입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3번째 컵 비우기를 결심합니다. 제가 있는 세운상가의 장인들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임대료 기원 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10월에 이미 일부를 지급했습니다.

 

 

이 돈이 비록 작고 미비할지 모르나 제가 진행하는 또 하나의 Do First로서는 꽤 멋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내를 위한 유튜브가 세운상가로 그 힘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꿈꾸지 않았던 것이 누구를 위하다 보니 하나의 꿈으로 다시 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꿈을 꾸기에는 다소 많은 나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하루에 150번 이상의 8분 47초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8분 47초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www.youtube.com/watch?v=PicPgdAFH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