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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장애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저는 히든싱어 왕중왕전 출신이에요. 제가 모창 했던 가수는 김종서 씨였어요. 그런데 제가 가수로써 소개될 때 더 많이 수식했던 단어는 시각장애인 이현학이었을 겁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제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공연이나 노래 이야기를 할 때 많은 분들이 반응을 되게 재밌게 보이세요. 제 노래의 스토리가 궁금하기보다 악보를 어떻게 보세요? 스마트폰은 어떻게 쓰세요? 등 질문들이 많이 나와요. 계속 공연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사람들은 내 노래와 내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각장애를 바라보는 걸까? 그 이후에는 나에게 던지는 시각장애와 관련된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가수 윤미래 씨의 무대를 봤어요. 검은 행복이라는 노래를 하셨는데 윤미래 씨가 혼혈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서 겪었던 아픔과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음악이라는 힘과 애정을 담담하게 노래하는데 되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혼혈이라는 정체성이 분명 아픔일 텐데 이것마저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그걸 듣고 있는 나는 더 큰 감동과 위로를 느끼는구나. 그러면 누군가는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알고 내 음악을 들으면 또 다른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장애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 노래도 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 실제로 장애에 관해서 자문하고 장애 감수성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을 하는 회사를 차려서 운영 중이에요.

 

 

 

 

 

 

 

 

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만약 스티비 원더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스티비 원더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가정이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고 좀 무거운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열심히 제 음악을 만들고 영상도 편집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인이 영상편집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스마트폰이 스크린에 있는 정보를 읽어주듯이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 역시 스크린에 있는 정보를 음성으로 읽어줘요. 그리고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확대 축소 기능도 제공을 해주고 있어서 음악이나 영상 작업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괜찮게 제 삶을 영위해 가고 있어요. 집안일도 좋아하고 요리도 곧잘 합니다.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와 시금치 된장국은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입니다. 당장 식당을 차려도 중박 이상은 자신이 있는 메뉴거든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요리한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그거 잘못하다가 불나면 어떻게요? 불도 있고 뜨거운데 화상 입으면 어떻게요라고 말씀하세요. 또는 다재다능하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눈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장애 관해서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저의 훌륭한 인품이나 잘생긴 외모와 포용력을 보지 않으십니다. 제가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이 안타까워서 저를 볼 때 시각장애가 가장 먼저 보이시는 거 같아요. 

 

 

 

 

 

 

 

 

임산부는 장애인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임산부가 직접 운전을 해서 쇼핑몰을 갑니다. 차에서 내리려고 차문을 열었는데 옆 차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요. 그래서 내릴 수 없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장애가 발생한 거죠. 일상 생활중에 장애가 발생한 장애인이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라는 의미를 너무 좁게 사용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눈이 안보이니까 귀가 들리지 않으니까 다리가 불편하니까 신체적 능력에 제한이 있으니까 장애인이다라고 생각해왔던 거 같아요. 저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어요. 그런데 임산부에게 장애인 주차 구역을 허락해 준다면 그 임산부가 차에서 내리고 탈 때 장애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장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말하는 스마트 폰이 개발돼서 세계에 있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함으로 장애가 줄어든 것처럼 우리의 시선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신체가 아니라 장애를 발생시키는 사회 곳곳으로 둔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장애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드려 볼게요. 여러분 혹시 프리사이즈 때문에 짜증 난 적이 있지 않나요? 전혀 프리 하지 않은데 내 맘을 프리 하지 않게 하는 그 프리사이즈. 모두에게 맞는 거처럼 자유롭다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처럼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 프리사이즈와 같은 세상이에요. 비시각장애인의 눈에 맞춰서 설계된 세상은 전혀 자유롭지 않아요. 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햄버거를 주문할 수없고 영화관에서 티켓도 살 수 없습니다. 도어록이 터치로 되어있어서 저희 집 현관을 못 열 때가 있어요. 그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장애는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맞는 다양한 사이즈의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제 자랑을 하나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 연애스토리를 잠깐 말씀드릴게요. 저의 여자 친구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교포예요.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이고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이고 여자 친구는 비장애인입니다. 연애를 10년 했어요. 미국에 공연하러 갔다가 너무 제 이상형이어서 제가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차였어요. 저는 제가 시각장애인이라서 거절을 당한 줄 알았는데 장거리가 연애에 자신감이 없다는 게 그녀의 거절 이유였어요. 저의 지속적인 애정공세에 결국 사귀게 되었지만 10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많은 편견과 부딪혔어요. 저희 두 사람을 처음 만난 분은 제 여자 친구를 보면 항상 너무 착하고 천사 같아요 라고 합니다. 사실 저도 되게 착하고 천사 같거든요. 이유는 뻔하죠. 그런 편견과 부딪히면서 연애를 하고 또 결혼을 하고 나니까 여자 친구에게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시각장애인이잖아, 그런데 나랑 사귀겠다는 마음을 먹는 데 있어서 두렵거나 힘들지 않았어? 왜 나랑 사귀었어?' 여자 친구가 대답합니다 '그냥 사람이니까' 아, 나도 그냥 사람이었구나 라는 말이 저에게 참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냥 사람, 그냥 가수 이현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그런 강연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장애인이 없지만 다시 한번 느낍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무섭고 또 잔인한지.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며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나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현학 씨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www.youtube.com/watch?v=YaASb5Nd9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