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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나이만 들어간다고요? 나오세요. 지금 삶의 바깥으로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폭풍 성장하는 모습에 저도 빠르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껴요. 그래서 둘째가 태어나면서 저는 본격적으로 노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경제뿐만 아니라 100세 시대에 우리 부부는 늙어서 뭐하고 살면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선 제가 생각한 노후의 준비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투자도 좋지만 부자가 못될 경우 연금이라도 잘 넣어서 빈곤한 노인이 되지 말자. 두 번째는 나이가 먹어도 직업이 있는 사람이 되자. 물론 직업의 개수는 상관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도전하면서 살면 참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노후를 생각하고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좋은 정보 우리 함께 공유해요 :)

 

 

 


 

 

 

 

 

 

1995년 서른 살을 맞이한 저는 결혼생활 3년 차의 기혼 여성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2월의 어느 날 저는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냅니다. 비록 월급 40만 원의 박봉이었지만 나름 활약도 컸고 굉장히 잘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싶어 진 겁니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꿈꾸는 일반인들을 위한 강좌를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수강료가 120만 원이라는 큰돈이 필요했어요. 남편한테 말은 할 수가 없었고 결혼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무사히 수강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렇게 저는 영화 제작에 빠지고 영화에 미쳤습니다. 그때는 배짱과 당당함으로 똘똘 뭉친 30살 안은영이었습니다. 

 

 

 

 

 

 

 

 

그런데 44살에 그런 자신감을 잃어버릴 위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저는 멕시코에서 11년째 교민으로 살고 있었어요. 가을의 어느 토요일에 저는 멕시코시티에서 지방 해안도시 베라크루스로 가는 미니밴에 탑승해 있었어요. 갑자기 교통사고로 차가 뒤집어졌고, 안전벨트를 안 한 저만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서 그대로 바닥에 쾅 떨어지고 맙니다. 예상한 데로 굉장히 심하게 다쳤어요. 사고 직후 저와 제 주변은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누구를 탓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척추전문병원에 갔더니 멕시코에서 진행했던 척추 수술이 의료사고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든 신경의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하반신에 마비 증세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발을 움직여 봅니다. 발이 움직여지면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루만 살 자의 마음으로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50이 되니까 조금 달라졌어요. 우선 몸이 너무 아파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30분만 한자리에 앉아있어도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견디지를 못해요. 그리고 어디에 지원서를 넣어도 50살이 딱 걸려요. 한국사회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하네요. 저를 굉장히 불쌍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니까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졌어요. 설상가상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습니다. 그런데 수술 이후 목소리가 잘 안 나와요. 가뜩이나 몸도 불편한데 목소리까지 안 나오니까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집니다. 때마침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시부모님 집으로 들어갑니다. 나이 50살에 시댁살이를 하게 되죠.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됐을 때 신변비관을 하지만, 사람이 자신감이 없을 때도 이렇게 신변 비관을 하게 되는구나. 진짜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2017년 2월 인터넷을 통해 <50 플러스 재단 중부 캠퍼스>라는 타이틀을 보게 됩니다.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봄학기 연극 교실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연극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제 심장이 쿵 소리가 났어요. 당장 일자리를 찾고 먹고살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알아요. 그런데 문득 9살의 은영이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하고 연출 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에도 학교, 직장에서 저는 틈만 나면 연극 대본을 쓰고 연출을 했습니다. 그래 나 이거 할 때 정말 행복했지. 나 사람들하고 이거 하고 싶었어. 죽고는 싶지만 죽기 전에 딱 이거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그렇게 나한테 마지막으로 기회 한 번만 주기로 했어요.

 

 

 

 

단돈 3만 원에 연극교실을 등록할 수 있었어요. 한 학기가 끝나자 저는 수강생 16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합니다. 창작극 강여사의 선택이라는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요. 우리는 점점 연극에 미쳐갔어요. 그해 12월에는 정식으로 공연료를 받고 공연도 했어요. 2019년 4월에는 여섯 명의 배우분과 함께 협동조합을 창립했습니다. 물론 1년 7개월 된 규모도 아주 작은 사업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퍼포먼스, 창작극 공연, 글쓰기, 강연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인생 최고의 친구를 만났고 인생 최고의 일을 찾았습니다. 이 모든 역사의 시작은 제가 서울 50 플러스 재단 중부 캠퍼스를 찾아가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그것은 5060 세대가 정말 바라고 또 필요로 하는 교육, 소통, 일자리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거대한 판입니다. 저는 우리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좋은지 모릅니다. 인생을 좀 살아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한자리에 계속 그냥 눌러 있는다고 인생에 변화와 발전이 오지는 않습니다. 체인지 플레이스를 해야만 새로운 기회 새로운 인생 무대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오세요. 나와서 아무 데나 가지 마시고 새로운 배움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일자리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2막을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사람 그리고 새로운 배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www.youtube.com/watch?v=DkHfNni6-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