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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나이가 들면 사랑 대신 이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시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그동안 시란 그저 어려운 문학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늘의 강의처럼 이렇게 가슴을 터칭 하고 공감되면서 치유되는 마음이 드는 건 처음입니다. 강의가 좋은 건지 시가 좋은 건지 구분이 안될 만큼 강의를 보는 내내 마음이 힐링되고 삶 자체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전율이 지금 모니터를 보고 계신 모든 분들이 느끼기를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 행복한 삶을 향해 우리는 함께 걷고 있기를 희망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강연을 하러 나온 정재찬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대중강연을 할 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키팅 선생님의 대사로 첫머리를 열곤 했습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모두 고귀한 일이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시,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 다이렇게 얘기하면 학생들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당장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낭만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요. 저도 젊을 때 그랬기 때문에 이해해요.

 

저는 대학에 들어갈 때 대학노트를 먼저 샀어요. 노트에 한문이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吾生也有涯 而知也有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우리의 삶은 언제나 끝이 있으나, 앎은 끝이 없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과 학문은 길다의 뜻이니까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구나 로 이해했어요. 그런데 살짝 의심이 가는데 그 밑에 장자의 양생 주 편에서 응용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장자 책을 뒤져보니 놀랍게도 저 말 뒤에는 이런 말이 나타났어요. ‘以有涯随无涯殆已’ (이유에수 무의태인).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따르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러니 대학노트에서는 저 구절을 빼놓고 우리 삶은 한계가 있고 배움의 세계는 끝이 없으니 열심히 공부하라는데 전체 문장을 보니 공부한들 무엇하리의 내용인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장자의 뜻에 이어 공부를 게을리했던 거 같습니다그런데 이제 중년이 되어서 다시 대학노트를 펼쳐보니 후회가 밀려옵니다. 장성남 씨의 옛 노트라는 시입니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웅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장석남 <옛 노트에서>

 

 

 

 

 

 

 

이제 저도 살다 보니까 대충 앵두까지는 된 거 같아요. 젊을 때는 목말랐고 조바심 있었고 교만하고 좌절 속에서 오고 갔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는 그 그리움을 견뎌내는 나이가 된 거 같아요. 왜냐면 저도 좀 익었거든요. 앵두가 돼간다는 것은 이제 그리운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거고 그리고 감사가 생깁니다. 긍정적으로 됩니다하지만 우리 인생이 앵두로 끝낼 순 없어요. 앵두에 감사하긴 한데 그래 본들 오뉴월입니다. 아직 내 인생에 가을이 남아있고 나는 앵두가 아니라 좀 더 큰 감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어쩌면 장자가 그때 알려주고 싶은 말은 공부하지 말라가 아니라 앎에 대해서 겸손해라의 가르침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더 짙은 가을이 되기 전에 나는 감은 돼야 되겠다. 그래서 제 인생길을 이렇게 한번 회고해 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살림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걸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 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길>

 

  

 

 

 

 

 

저도 여러분들에게 멋진 말 하고 싶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시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잘 없습니다. 아니면 뜻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서 그 길이 내 차지가 되지 않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산의 정상에 올라가고 싶었죠. 근데 올라가는데 자꾸 길이 끊어지고 누가 저를 끌어내리고, 딴 길로 가게 하는 그런 인생길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비구비 흘러서 헤매다 내려오다 보니까 요즘 에서야 살짝 깨달어요. 내가 갈 길이 원래 산길이 아니라 바다를 향해 가는 사람이었구나를요.

 

 

그래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더 낫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도 참 좋은 말이지만 사실 어쩌면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을지도 몰라하고 사는 삶도 참 좋은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사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스티브 잡스에게도 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꽃 길로 간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저더러 남은 인생 꽃길로만 가세요라고 한다면 제가 하는 일은 남이 곱게 만들어낸 꽃을 짓 밝은 거 왜 엔 하는 게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꽃길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시면 그 바닥에 흙을 깔고 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모든 꽃 길은 원래 흙 길이였습니다. 진짜 내가 가야 하는 꽃 길은 그 흙길들의 꽃을 피우는 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그 꽃길을 밝도록 깔아주는 게 내 인생의 진짜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길을 찾아 밖으로 헤매는 거예요. 길이라는 게 사실은 내 안으로 나있는 길이 었구나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로를 궁금하세요? 그럼 세상의 직업을 뒤져보는 게 아니라 먼저 나를 보셔야 돼요.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좋은 사람인지 생각해보셔야 되는 거예요. 그거 하기 젤 좋은 나이가 인생의 중년 이후입니다. 젊을 때는 그게 잘 안 보이지만 중년이 넘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요. 그리고 굉장히 관대해지고 긍정적으로 됩니다. 시기 질투도 사라져요. 우린 이미 앵두가 되었으니깐요

 

 

그럼 이럴 때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입니다. 그동안 했던 공부는 그냥 대학을 가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공부였죠. 이제는 정말 내가 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이 나이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니라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나무학교>

 

 

 

 

 

 

 

나무는 100200년을 살았어도 나이를 겉으로 티 내는 게 아니라 안에 나이테에 새겨놓습니다. 늙음이라는 것은 젊음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젊음을 계속 감싸 안으면서 나이테가 계속 커지는 것이지 젊음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그게 성숙이라고 생각해요. 젊음을 포용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토록 나이 든 나무도 나뭇잎은 푸르르고 울창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나이 든다는 것은 나이테처럼 젊음을 감싸고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여전히 내년은 푸르렀으면 좋겠다는 어른으로 늙어가는 것이 아닌 어른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공부를 멈추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부를 필요로 의해서 해왔어요.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미웠던 거고, 취직을 위해서 했던 공부가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많아도 공부를 좋아하는 친구는 없어요. 정말 우리가 필요한 건 공부를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되는 거예요. 아마추어란 애호가라는 뜻입니다. 애호가는 서툰 사람이 아니라 좋아해서 더욱 스스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둑의 애호가는 절대 7급에서 머물려고 하지 않습니다. 6급으로 5급으로 올라가려고 스스로 책을 사서 공부를 합니다. 그게 공부입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공부를 향해 나아갈 때입니다. 그럼 언제까지 공부를 해야 할까요? 제가 살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에 읽은 시를 끝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도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김사인 <공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아버지, 살짝 예쁜 치매가 오셔서 침상에 누워 골똘히 천장만 응시하면서 옛 추억에 기대어 사셔야 하는 어머니, 두 분 다 모두 끝까지 공부하시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분들도 처음으로 겪는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가장 큰 공부를 하고 있었던 거고 인생은 죽기까지 다 공부라고 생각하니까 견딜만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吾生也有涯 而知也有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 세계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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