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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미안하다'는 고백의 힘

 

 

사과에도 유명한 말이 있죠. 사과를 할 때는 사과만 해야지, 그런데가 붙으면 사과가 아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가 그 사람이 듣고 싶은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그때 왜 그랬는지를 자꾸 앉혀 놓고 설명하려고 들어요. 가끔은 말하는 사람이 합리적으로 사과하고 있다는 그 합리성은 사과를 받는 사람한테는 가장 비 합리적이고 비 논리적인 사과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했던 사과는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잘못을 포장하고 변명을 하기 위한 가짜 사과였죠. 하지만 왜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한지 오늘의 강의를 보시면 큰 깨달음을 얻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오늘의 강의 시작해볼까요?

 

 

 


 

 

 

 

 

 

 

어느 날 저녁 뉴스를 통해 한 여자아이의 자살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아이의 이름은 희원이입니다. 국민 청원 글을 읽고 저는 이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희원이 아버지와 연구소에서 장시간의 미팅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희원이의 동생과 지속적인 만남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외상의 국가일지도 모릅니다.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말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행복한 사람도 만나고 아픔이 있는 사람도 만나요.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어떤 자극, 어느 상황이 되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가서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어릴 때 선생님한테 맞았던 사건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힘들어하세요. 또 많은 청년들은 부모님들로부터 받았던, 어쩌면 부모님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건 때문에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나한 테 사과하지 않을까라고 고통스럽게 호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그때 건강하게 사과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들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잠시 우리가 죄책감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을 남기고 가는지 짚고 가고 싶어요.

 

 

 

 

 

 

 

 

첫 번째는 제가 어릴 때 굉장히 힘들어했던 기억을 부모님한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저의 부모님의 기억이 굉장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한테는 여전히 생생한 아픔인데 저희 부모님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2학년의 아들이 있는데, 가끔 저한테 그때 너무 서운했다고, 힘들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사실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굉장히 많았어요. 우리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고 받고 있고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내 삶을 허비하고 낭비하고 힘들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허무했어요그런데 저는 오늘 우리가 죄책감을 다루는 무지의 개념을 나누고 싶은 게 아니라 두 번째와 세 번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두 번째는 자기혐오와 자기 비난에 빠지는 죄책감의 방식입니다. 어떠한 청년이 아버지께서 너무 힘들게 청년을 키워서 대학을 보내셨는데 어릴 때 늘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워서 학교에도 못 오게 했답니다. 그런데 커서 아버지의 고생을 생각할 때마다 자기가 나쁜 자식 같고 쓰레기 갖고 형편없는 자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데요. 우리는 소중한 사람한테 어떤 실수나 후회되는 일이 생기면 과도하게 우리 자신한테 비난이나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에 빠지죠. 그런데 아버지는 청년의 사과를 이런 식으로 받을 때 행복할까요? 아버지 내가 정말 쓰레기 같은 자식이고 형편없는 놈이에요 라는 말이 아버지에게 위로와 힘이 될까요? 상처 치유가 될까요?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엄마 아빠 같은 무능력한 사람 만나서 미안하다 라는 그 고백은 자식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는 죄책감을 합리화로 다룹니다. 저는 가끔 제 아이를 불러서 고백을 할 때가 있어요. 엄마가 미안해 어제 야단쳐서 미안해, 근데 네가 생각해봐 너는 잘했는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김 과장 일루와 바, 내가 어제 소리쳐서 미안해. 그런데 너 일하는 태도를 보면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너라면 나 이해하겠어 안 하겠어. 결국 과장님은 고백합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여러분, 사과는 누구를 위한 사과였을까요? 합리화는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인 거 같아요. 우리는 사실 미안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살아요. 건강한 사과는 과연 멀까요? 어떻게 다가가면 이 후회되는 마음을 상대에게 맞춰서 표현하면서도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수시로 자신의 행동을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유한적 존재이고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계적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저희 아빠가 아침 445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저는 달려가는 차 안에서 땅을 치고 후회를 합니다. 우리 아버지 덜 미워할 걸. 그때는 그러지 말 걸. 한계상황에 우리가 멈추면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누구나 진솔하게 상대에게 다가갈 내 마음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사과할 때 내 자신의 부족함에 포인트를 맞추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 아픈 곳에 마음을 둬야 합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나쁜 아빠다 가 아니라, 아빠가 내 행동에 대해서 후회한다, 네가 아빠의 행동으로 의해서 너의 이런 부분이 아팠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빠도 마음이 아프다. 아빠가 다음에는 다르게 행동하고 싶다. 너의 생각은 어떠니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제발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가 그 사람이 듣고 싶은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그때 왜 그랬는지를 자꾸 앉혀 놓고 설명하려고 들어요. 가끔은 말하는 사람이 합리적으로 사과하고 있다는 그 합리성은 사과를 받는 사람한테는 가장 비 합리적이고 비 논리적인 사과입니다. 사과를 할 때는 그냥 다가가서 진심을 다해 미안했다고 후회한다고 내행동을 생각하면 나도 아쉽다고 나도 아프다고 다음엔 다르게 하고 싶다고 좀 도와 달라고 어떻게 하면 너의 마음이 나아질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면 내가 노력해보겠다고 해주세요.

 

 

마지막 진심의 후회에서는 변화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희원이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누나가 죽어 있었던 그 현장에 피투성이인 누나의 가슴을 누르고 어떻게 든 살려보겠다는 그 용감한 동생을 떠올리면서. 만약에 그 과정이 오기까지 그 아이가 진심 어린 사과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고 친구들의 변화된 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죽었을까요? 저는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후회하는 마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내 인간다움을 믿고 용기 있게 다가가서 상대의 아픈 마음에 집중하고 고백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진심으로 미안하지 않을 때 좋은 관계만을 위해서만은 사과하지 말아라. 그러나 너의 마음을 비춰볼 때 진심으로 미안할 때는 그 상대에게 다가가서 진심으로 고백해라. 그리고 다시는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변화된 행동을 약속하고 노력해라.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존재이며 완전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만의 노력으로도 외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상을 예방할 수 있는 관계가 될 때 일상에서 그런 관계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때 우리의 외상은 극복됩니다.

 

 

끝으로 한 아빠의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5살 아들과 마트에 가게 되었는데, 가기 전에 5살 아들한테 마트에 가거든 떼쓰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장난감 코너에서 또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빠는 한번 더 떼쓰면 자동차에 가둔다고 협박을 합니다. 아이는 또 떼를 썼고 결국 아빠는 지하주차장에 갔습니다. 자동차 뒷문을 열고 아이를 차 안에 집어넣고 5분을 카운트 다운했다고 합니다. 5분 후 아이를 꺼내 주자 아이는 울며불며 다시는 떼쓰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버릇을 고쳤다고 믿고 있었어요,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PTSD입니다. 이 아이는 그 후로 혼자 있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했고 불을 끄면 난리가 났고 잠을 잘 때도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이 아이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어두운데 갇혀 있거나 무서운 적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기억할 수가 없어서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그때 했던 행동이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 어릴 때 너를 차에 넣고 밖에서 기다렸는데, 그게 그때 너한테는 참 힘든 일이었을까 같다. 그러자 아들은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아빠가 나를 하루 종일 가뒀다고. 아빠의 물리적 5분은 아이의 정서적 시간으로는 하루 종일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아버지는 5분이었어라고 변명하지 않고, 그래 미안하다. 그게 너한테 정말 힘들었었지. 아빠가 정말 몰랐네. 아빠가 정말 잘못했다. 그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불을 끄고 자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사과하세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부를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저 역시도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이렇게 강연을 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저의 말이 여기 계신 또 누군가의 아픔이 되지 않을까,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기 계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고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그건 진심입니다. 저의 강연 중에 어떤 부분이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기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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