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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읽다,세상을보다

융합적 사고를 위해 버려야 할 것

 

 

저희 첫째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데 아직 한글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급하지 않고 또 한글을 입학하기 전에 필수로 알아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꼭 다른 아이들이 다 안다고 해서 우리 아이도 알아야 하는 강박이 너무 싫었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편지를 써줄 때 게임할 때 자막을 모를 때 불편함은 있지만, 한글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동화책을 읽을 때 글자보다는 그림에 집중을 하게 되고, 저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소통이 되는 책 읽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글보다는 내용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배움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만, 혹은 보여주기 식의 공부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러 방면의 길을 보여주되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가게 서포트해주는 게 가장 부모도 아이도 편하면서 길게 갈 수 있는 길인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우리 아이가 경제와 사회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8살부터는 매일경제 신문을 함께 보거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연스러운 습관보다 효과 빠른 공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와 함께 할 때 그의 효과는 배가 되기 때문에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취업박람회에 가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인재들이 각 기업 앞에서 줄을 서서 면접을 보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발명하고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있는데, 그 미래가 그 긴 줄의 한 명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디 가서나 스스로 빛나고 사람들이 나의 생각과 가치를 알아주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지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줄을 서서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닙니다. 

 

 

 

 

 

 

 

 

콘서트나 운동경기장에 가면 늘 화장실이 부족한 걸 보실 겁니다. 그래서 옆에다가 간이화장실 10개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8칸을 내버려 두고 2칸에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화장실을 빨리 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는 것보다 빈칸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건데, 사람들은 희한하게 줄이 있는 칸에 가서 줄을 습니다. 왜냐면 줄이 있기 때문에. 그저 사람은 희한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생각을 향해서 바로 뛰쳐나가는걸 굉장히 두려워하고 8칸 빈칸 앞에 사람이 없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미 줄이 있는 데에 가서 줄 서는 게 안도감을 느껴요.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기업에만 취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아무리 주장을 해도 여기에 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에 줄을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줄은 갈수록 더 길어질 겁니다.

 

 

 

 

 

 

 

 

위의 그림은 캐나다의 한 방송에서 나온 만평인데 성난 로봇이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내쫓고 있습니다. 오른쪽 표는 캐나다 방송국에서 예측한 향후 사라질 일자리의 퍼센트입니다. 그러니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환경에서 아직도 우리가 알고 있는 줄 뒤에 가서 선다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까 그 취업 박람회에 있는 청년들 마저도 굉장히 운 좋은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하는 더 안 좋은 위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교육에서 저같이 강의를 하는 사람이 멘토링하고 학생들을 접하는 데서 어떤 겸손함을 받아들여야 된다면 옛날과 다르게 여기에 있는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났을 때 어떤 일을 할지 를 모른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육의 목적이 굉장히 다르게 돼요. 내 아이가 의사가 되면 좋겠다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거기에 맞는 지식을 채워주고 그 아이가 그 직장에 들어가면 나는 부모로서 일을 다했다 또는 선생님으로서 일을 다했다 라고 말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이 아이들이 자라나면서부터도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다 없어질 것이고 이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새로 생긴 일자리를 얻어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얘네들을 준비시킬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교육은 Autonomous Learning 그리고 Continuous Learning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가 돼야 하는데 하나는 자발적인 공부 그리고 하나는 계속적인 공부란 뜻입니다. 학생 때는 지식을 쌓았고 학교에서 졸업하면 이제 배움은 끝이고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자기가 보는 것 모든 것이 끊임없이 공부가 되는 그런 아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근데 문제는 계속적으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공부하려면 정보를 스스로 습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나 선생님이 옆에 없을 때 자기가 알아서 강의를 보고 책을 읽고 뭔가 설명서를 읽었을 때 그게 자기 것이 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실질 독해력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실질 독해력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실직 독해력이란 글을 읽고 선생님 없이 그 글을 바로 응용할 수 있으면 실질 독해력이 있는 겁니다. 글을 읽고 무슨 뜻인지 알아도 내 인생의 변화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실질 독해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실질 독해력이 낮은 이유는 우리 세대가 글 읽기를 잘못 배워서에 있습니다. 실질 독해력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글을 먼저 이해하고 그래야 독해력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공부할 때 이해를 안 해야 점수가 올라갔습니다. 그냥 외우고 내 의견이 표명되는 순간 점수가 떨어집니다. 우리는 글을 읽고 이해를 하고 내 것을 만들고 내 인생을 응용하는 것이 아니라 안 녹인 채로 지식을 같다 머리에 지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안 녹은 지식은 어떤 특징이 있냐면 무겁습니다. 무겁기 때문에 머리에 지고 다니다가 기말고사 시험지가 나오면 거기다가 뱉어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몸이 가벼워집니다. 왜냐면 지식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우리가 계속적으로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에 책을 읽던지 강의를 듣든지 뭔가를 갖다 우리가 지식을 습득했을 때 이것이 융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융합의 융은 뭔가를 녹인다는 느낌이고 합은 뭔가를 합친다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 뭐를 녹여서 무엇을 합치냐를 이해하면 됩니다. 지식을 습득한다 그래서 내 것이 된 게 아니라 그것이 녹을 시간을 줘야 된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려줘야 합니다. 이것이 이해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책을 읽고 그것이 녹아 날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주면 그게 내 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삶과 합쳐지는 부분을 찾을 수가 있어야 합이 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시를 읽었다고 하면 산에 가서 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시인이 말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겁니다. 즉 생활과 지식의 합쳐지는 부분이 합입니다. 

 

 

 

 

 

 

 

 

예전에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헨리 포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장 대량생산을 가능하기 위해서 3가지의 균일화를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는 부품을 균일화해야 하고 두 번째는 소재를 균일화 해야 하고, 세 번째는 노동을 균일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동작을 똑같은 명령에 따라서 이행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 대량생산의 원칙을 통해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이 미국 경제의 축이 됩니다. 기계가 돌아갈 때 따르릉 소리가 나면 군말 없이 미리 준비하고 서있는 아이들을 갖다 길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줄을 맞춰 앉아있게 하고 공장에서 담배 피우는 시간에 맞춰 50분 수업을 하고 10분을 휴식하게 만들고 학교종이 땡땡땡을 부르면서 학교에 가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이런 교육의 철학이 다 꽂혀있습니다. 이 교육 철학은 2차 사업 혁명의 락 펠러라는 사람의 회사 이름으로 정리가 됩니다. 바로 '스탠더드'입니다. 스탠더드란 실체 전에 정답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양복점에 가서 옷을 사러 갔는데 옷이 안 맞아요, 그럼 우리는 옷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옷 사이즈로 바꿔달라고 합니다. 음식에서 가서도 음식이 싱거우면 내 입맛에 맞게 소금을 넣어서 먹습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물건을 소비할 때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 맞춰서 물건을 바꿉니다. 이것이 창의력의 시작입니다. 근데 오직 교육에 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내 아이가 맞지 않으면 내 아이를 바꿉니다. 이것이 '스탠더드'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융합적 인재를 키우기 위해 머릿속에 이 단어를 심어줘야 합니다. 인무학에 영어 버전인 LIBERAL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LIBERAL이라는 단어는 원래 로마 제국에서 노예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남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결정해서 하는 사고방식을 말하고 이 사고방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즉 아무리 위대한 사람의 학술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LIBERAL(arts)의 핵심입니다. 그걸 우리가 비판적 사고라고 합니다. 

 

스탠더드를 뽑고 비판적 사고를 심어주고 아이템들한테 시간을 주는 이 세가지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분명히 빛나는 미래를 맞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www.youtube.com/watch?v=srp8defXNNI